의재 허백련(毅齋 許百鍊, 1891~1977) 연보
- 1891년(1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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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1월 3일, 전남 진도군 진도면 남하리(남동리 524번지)에서 부친 허경언(許京彦, 1870~1944)와 모친 박동애의 6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.
- 소치 허련(小癡 許憐, 1808~1893)이 종고조임.
- 1889년(9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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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미산 허형(米山 許瀅, 1862~1938)으로부터 묵화의 기초를 배움.
- 무정 정만조(茂亭 鄭萬朝, 1858~1936)에게 한학과 시문, 글씨를 배움.
- 1909년(19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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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정만조가 의재(毅齋)라는 호를 지어줌
- 그리고 모친이 백년토록 오래 살라고 지은 아명인 백년(百年)을 백련(百鍊)으로 부르기 시작함.
- 1912년(22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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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외가의 척숙인 이병인와 함께 일본으로 감.
- 교토(京都) 리츠메이칸(立命館大學)대학(당시 교토법정대학) 법과 입학
- 1915년(25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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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고무로 스이운(小室翠雲, 1874~1945) 문하에서 본격적인 화가 수업
- 1916년(26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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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첫 개인전, 니이가다(新潟)에서 일본 전역을 다니면서 화회를 엶
- 1918년(28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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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부친 위독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, 진도에서 작품활동.
- 1920년(30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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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목포 상공회의소에서 국내 첫 전시, 30여점.
- 1921년(31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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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2년(32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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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 출품. 동양화부 1등 없는 2등 당선.
- 1923년(33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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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4년(34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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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27년(37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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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사군자 <매월도(梅月圖)>로 특선.
- 이후 조선미전 출품하지 않음
- 세 번째 일본행(진도 보통학교 교장 요시다 가쓰구마의 동생 오시마 히로시의 초청), 구마모토시(態本市)에 거주
- 1928년(38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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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일본 화조 화가인 다케다(竹田)를 초청하여 양지환, 김은호와 함께 금강산 유람.
- 1932년(42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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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삼월백화점(현 신세계백화점)에서 이당 김은호와 2인전
- 1936년(46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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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김은호, 박광진, 김복진 등과 함께 조선미술원 창립
- 1938년(48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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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광주에 정착하여 연진회(鍊眞會) 발족, 회원 14명
- 1940년(50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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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《제2회 연진회원전》
이당 김은호, 소정 변과식, 춘곡 고희동 등 찬조 출품. 낙관에 의재산인(毅齋散人) 사용.
- 1944년(54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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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45년(55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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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일본인이 경영하던 무등산다원을 인수, 춘설차라 명명하고 삼애다원 시작. 수류화개관(水流花開館), 근인당(近仁堂), 춘설헌(春雪軒)이라 이름함.
- 1947년(57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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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1년(61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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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3년(63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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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광주농업고등기술학교 개교. 연진회 재개. 완벽당 화랑 사랑채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경연
- 1954년(64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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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55년(65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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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0년(70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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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2년(72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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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김은호, 이상범과 함께 대한민국 문화포장(文化褒章) 수상
- 1966년(76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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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69년(79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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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1년(81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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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3년(83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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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동아일보사 주최 《허백련 회고전》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상
- 1974년(84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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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77년(87세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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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2월 15일 자택에서 심장병으로 별세. 광주공원에서 사회장.
- 1989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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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991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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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2001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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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1월 광주 무등산 춘설헌 근처에 의재미술관 개관
- 2015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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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국립광주박물관에서 <의재 허백련 毅齋 許百鍊 전통회화 최후의 거장> 개최